지중해 최고의 휴양도시 안탈랴
간략설명 | 터키는 위로는 흑해, 서쪽으로는 에게해, 남쪽으로는 지중해를 끼고 있습니다. 터키의 가장 남쪽 이집트를 바라보는 지중해 연안의 완벽한 휴양도시가 안탈리아입니다. 안탈리아는 태생부터 낙원이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국시대에 '땅위에 천국을 건설하라'는 명령에 따라 지어진 도시라는 것입니다. 터키의 역사가 그러하듯 안탈리아도 수차례 권력의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동서양과 기독교 이슬람의 문화 유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대 헬레니즘과 비잔틴 문화, 셀주크 왕조의 이슬람 사원들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안탈리아의 가치는 이런 유적보다는 지중해가 선물한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일년 중 300일 넘게 따스하고 환한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토로스 산맥의 여유로움과 포근함은 완벽한 지상낙원의 모습입니다. 수상스키와 래프팅 등의 레저를 즐길 수도 있고 인근 마을인 벨렉에는 아주 잘 가꾸어진 골프장도 있습니다. 2천년이 넘는 동안 낙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천혜의 관광지 안탈리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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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간략설명 | 지인아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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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린제 마을
간략설명 | 지인아팀 쉬린제 컨텐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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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문명의 꽃, 에페소
간략설명 | 에페소는 2,500년보다도 훨씬 전,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건설된 터키 최대의 고대도시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경의 '에베소서'는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2년간 수형생활을 하며 쓴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이것이 성경의 에베소서입니다. 사도바울은 선교여행을 하며 에페소에 교회를 세우고 3년간 거주한 바 있습니다. 터키의 서쪽 끝, 에게해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에페소는 수천년전부터 중요한 상업의 요충지로, 고대문화의 꽃을 피운 예술과 문명도시로 발전해왔습니다. 특히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현재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으며, 오래도록 인근 나라들과 그리스로부터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성지역할을 해왔습니다.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리스 로마 시기에 세워진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헬레니즘 양식으로 축조된 도시의 성벽과 켈수스 도서관, 이즈미르 아고라와 원형 대극장 등이 유명합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정식 명칭은 '에페수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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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사
간략설명 | 터키 5대 도시중 하나인 부르사는 이스탄불과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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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블루모스크)
간략설명 | 이스탄불의 상징이자 비잔틴 건축의 최고봉은 아야 소피아입니다. 터키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 성당이던 아야 소피아를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했습니다. 여기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오스만 제국의 사람들은 바로 건너편에 아주 비슷하게 생긴 아름다운 사원 하나를 더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을 가진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입니다. 사원 안쪽을 2만개의 푸른색과 녹색 타일로 장식했기 때문에 해가 막 뜬 아침이나 해질녘에 가면 빛에 반사된 타일이 황홀한 파란 빛을 만들어냅니다. 터키의 이슬람사원으로는 유일하게 6개의 첨탑이 세워져 있는데 첨탑의 갯수는 사원의 레벨을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건설당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원 건설을 지시한 황제가 금(Altin)으로 만든 첨탑을 세우라고 지시하고는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갔는데, 금을 조달할 수 없었던 건축가가 금이 아닌 6개(Alti)로 잘못 듣고 세웠다고 변명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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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카프 궁전
간략설명 | 한 때 세계 최강국이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광과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경이로운 궁전입니다. 이스탄불의 상징 아야 소피아에서 걸어서 몇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습니다. 돌마바흐체 궁전이 생길때까지 약 400년 동안 터키의 정궁 역할을 해왔으며 한때 궁전에 거주하는 인구가 5만명이 넘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4개의 정원과 각 정원에 딸린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금남(禁男) 구역 하렘(Harem)이 있던 제2정원에는 모두 400여개의 방이 있었는데 여성들과 황제, 환관들만 출입할수 있었습니다. 제3정원의 보물관은 궁전관람의 백미입니다. 터키 황제가 사용하던 갑옷과 화려한 무기, 보석 장신구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평지의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이스탄불을 찾는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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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간략설명 | TV 예능에서 수도이름 맞추기 게임을 할 때 꼭 등장하는 것이 '터키의 수도'를 맞추라는 질문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스탄불이라 답하기 때문입니다. 터키의 수도는 바로 이 곳 앙카라입니다. 이스탄불이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이라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비해, 앙카라는 터키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세운 지도자 아타튀르크가 '더 이상 서방권력의 침입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곳을 수도로 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발 800미터를 넘는 고원인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 있다는 것이 그 추측을 뒷받침합니다. 그렇다고 앙카라가 서방의 침입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기원전 2천년 갈라티아 왕국의 수도시절부터, 로마와 페르시아, 아랍, 십자군,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바 있는 곳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앙키라', '앙고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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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사르
간략설명 | 카파도키아는 멀리서 보면 그냥 뾰족한 바위산들이 모여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놀라게 되는 곳입니다. 평범한 바위산들에 뚫린 수많은 구멍들과 그 구멍들 안으로 펼쳐지는 동굴속 도시 때문입니다. 우치사르는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동굴도시입니다. 괴레메 골짜기의 전경이 막힘 없이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카파도키아의 전망대로 일컬어지며 수 많은 여행자들이 들르는 곳입니다. 마을 한 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우치사르 성 역시 사람이 쌓은 성이 아니라, 사람이 '파낸' 성입니다. 이 곳을 터전으로 삼은 카파도키아 사람들은 가장 커다란 화산 바위에 수십개의 구멍을 뚫어 평지의 대성당 부럽지 않은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우치사르가 대표적 관광지가 되면서 이 멋진 기암괴석들을 깨끗한 테라스에서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들도 여럿 생겨나 여행 중 잠시의 여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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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레메 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유적
간략설명 | 터키의 한 가운데 아나톨리아라는 이름의 고원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해발 고도 1천미터가 넘는 그 고원의 중앙부 화산지대를 카파도키아(Cappadocia) 지역이라 부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땅이지만 터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곳에 동굴 속 지하도시를 만들어 살아왔습니다. 로마 지배하의 비잔틴 제국 시절, 종교 탄압을 피해 이 곳으로 숨어 들어온 기독교인들은 괴레메 계곡 근처 바위산 여러 곳에 동굴을 뚫고 그 안에 놀라운 수도원과 성당을 건설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곳을 은신처로 택한 이유는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을것만 같은 계곡 전체의 신비로운 풍경때문입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자 은신처였던 이곳은 성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난의 현장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뿐, 7세기 후반 이슬람 제국이 아나톨리아를 침공했고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피난민들이 다시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로 숨어들었습니다. 한때 그 인구가 6만명을 넘기도 했기 때문에 지하도시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10세기 경에는 동굴 속 성당과 수도원이 360개를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이후 여러차례 권력이 교체되었지만 기독교인들은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카파도키아와 괴레메 계곡은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인상적인 벽화와 함께 전설이 되었습니다. 카파도키아는 여행의 추억을 담는 사진을 찍기에 무척 좋은 곳입니다. 배경과 뚜렷이 대비되는 화려한 색상의 옷차림을 준비하시면 좋습니다. 한겨울엔 무척 추운 곳이므로 내의와 목도리, 장갑과 모자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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